강아지와 고양이 같이 키우기: 호두와 네 고양이가 함께 사는 방식
집 안이 조용할 때 호두와 고양이들은 각자 자리를 찾아 쉰다.
호두는 바닥에 누워 있거나 현관 밖을 바라본다. 고양이들은 캣타워나 책장 위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창가에서 햇볕을 쬐거나 방충망 너머를 바라보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잘 때도 대부분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때로는 몸이 닿을 만큼 가까이 누워 있기도 한다.
서로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시간이 훨씬 많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을 공존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개와 고양이는 원래 잘 지내기 어려운 동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처음 바꾸게 한 것은 호두가 발견한 아주 작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호두가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칸트를 발견한 날
2024년 7월 26일 아침, 호두와 산책하던 중 주차장에서 어린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였고 옆구리에는 상처가 있었다. 몸은 작았지만 울음소리는 아주 힘찼다. 호두의 공과 공을 닦는 수건, 배변 봉투를 넣어 다니던 작은 가방에 새끼 고양이를 넣어 집으로 데려왔다.
그 아이가 칸트였다.
당시 방학 중이던 둘째 딸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고, 내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까지 칸트를 돌봐 주었다.
처음부터 칸트를 키울 생각은 아니었다. 상처가 낫고 건강해지면 동물보호소 같은 곳에 맡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린 새끼 고양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거의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한 생각이었다.
결국 아내의 동의를 얻어 칸트를 집에서 키우기로 했다.
우리 가족에게 고양이를 키워 본 경험은 없었다. 나 역시 개와 고양이는 흔히 말하는 ‘견원지간’처럼 서로 싸우는 동물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호두는 칸트에게 놀라울 만큼 강한 관심을 보였다.
호두의 관심이 공격인지 호기심인지 알 수 없었다
호두는 칸트를 계속 따라다녔다.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으려 했고 코를 들이밀거나 몸을 접촉하려 했다.
문제는 내가 그 행동의 의미를 전혀 판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호두가 단순히 새로운 작은 동물을 궁금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양이에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구별할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먼저 칸트를 보호하는 쪽을 선택했다.
충분한 크기의 복층 케이지를 구입해 칸트를 그 안에서 생활하게 했다. 사람이 없는 동안에는 케이지를 별도의 방으로 옮겨 호두가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가족이 집에 있을 때는 칸트를 밖으로 나오게 하면서 호두와 접촉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렸다.
당시에는 이것을 체계적인 ‘합사 과정’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검색했고, 알아낸 만큼 대응했다.
고양이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이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일도 있었다. 갓 태어난 칸트에게 먹이려고 고양이용 분유를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 고양이의 주식용 분유가 아니라 성묘에게 주는 간식용 제품이었다. 처음에는 사람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듯 칸트의 배와 머리가 위를 향하도록 안고 분유를 먹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개와 고양이를 한 집에서 함께 살게 하고 있었다.
관심이 줄어들자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다행히 호두가 칸트에게 보이던 강한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칸트가 케이지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둘이 접촉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호두는 점차 칸트를 덜 따라다녔다.
2024년 8월 29일에 찍은 동영상이 하나 있다.
호두가 바닥에 가만히 누워 있다. 어린 칸트가 다가와 호두를 앞발로 툭툭 치며 장난을 건다. 그런데 호두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호두가 칸트에게 다가갈 때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긴장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칸트가 먼저 호두에게 다가가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약 두 달 뒤인 2024년 10월 21일에 촬영한 영상에도 비슷한 모습이 남아 있다. 어린 칸트는 바닥에 누워 있는 호두 곁에서 호두의 꼬리를 앞발로 건드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뒤 칸트는 호두 가까이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몸을 붙이고 있기도 했다.
칸트가 호두를 특별히 경계했던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칸트는 우리 집에 온 뒤 며칠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칸트가 세상을 눈으로 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호두는 이미 그 주변에 있었던 셈이다.
당시 우리는 호두가 칸트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것이 실제로 호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호두가 어린 칸트를 지속적으로 위협하지 않았고, 처음의 강한 관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줄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이후 다른 동물들을 만났을 때도 반복되었다.
호두와 산책하다 날지 못하는 어린 까마귀나 까치 등을 발견해 잠시 보호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런 동물에게도 호두는 처음에는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고 계속 관찰하려 했다.
최근 마당의 어린 고양이들에게도 비슷했다.
새로운 작은 동물을 보면 한동안 높은 관심을 보이지만, 익숙해지면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호두에게서 반복해서 본 행동이었다.
후쿠와 노랭이, 화이티가 들어왔을 때
후쿠가 우리 집에 왔을 때 호두의 반응은 칸트 때와 매우 비슷했다.
처음에는 후쿠를 계속 살펴보고 가까이 가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시 관심은 줄었다.
후쿠 쪽에서도 호두를 계속 경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재 후쿠는 호두가 산책에서 돌아오거나 식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가까이 가서 얼굴이나 몸을 부비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럴 때 호두가 가끔 소리로 으르렁거리기도 하지만, 큰 갈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노랭이와 화이티의 경우는 처음부터 조금 달랐다.
두 아이는 완전히 집 안에서 살기 전부터 호두에게 낯선 고양이가 아니었다.
노랭이는 마당에서 살던 시절에도 호두 가까이에 거리낌 없이 다가갔다. 몸을 붙이고 낮잠을 잘 때도 있었다.
화이티는 달랐다. 호두 근처에 머무르기는 했지만 호두가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두 아이가 추위를 피하기 위해 현관과 집 안 사이 공간에서 머물거나 밥을 먹던 기간도 있었기 때문에, 호두는 실내 합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두 아이의 모습과 냄새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검사를 마치고 격리를 종료해 방문을 열었을 때 호두는 다시 두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칸트나 후쿠 때만큼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잠시 살펴본 뒤에는 다시 평소처럼 지냈다.
그때의 나는 칸트를 처음 데려왔을 때와 달랐다. 적어도 호두가 새로운 고양이를 본다는 사실만으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호두와 칸트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집에는 호두만의 자리가 없다
현재 호두와 네 고양이는 호두가 갈 수 있는 집 안의 거의 모든 바닥 공간을 함께 사용한다.
흥미로운 것은 호두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고집하는 자리를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호두가 오래 사용해 온 침대도 예외가 아니다.
화이티와 노랭이는 그 침대를 자주 사용한다. 화이티는 밤에 그곳에서 잠을 잘 때도 있다.
후쿠도 이 침대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이미 고양이가 누워 있다고 해서 호두가 다가가 쫓아내거나 자리를 되찾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럴 때 호두는 그냥 다른 곳을 찾는다.
이런 모습은 고양이들에게서도 비슷하다. 누군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굳이 빼앗으려고 하는 행동을 거의 보지 못했다.
후쿠나 노랭이가 호두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가 몸을 붙이고 눕기도 한다.
호두는 대부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수직공간도 많다. 캣타워, 책장, 책상 위 등 호두가 올라갈 수 없는 장소가 곳곳에 있다.
따라서 고양이가 호두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싶다면 어렵지 않게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호두를 피하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자주 보지 못한다.
가끔 호두가 흥분해 고양이를 쫓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고양이가 바닥에 등을 대고 앞발을 휘두르며 호두를 제지하기도 하고, 화이티는 높은 곳으로 피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일상적인 모습이라기보다 드문 예외에 가깝다.
여러 고양이가 함께 사는 집에서 각자가 쉴 곳과 필요한 자원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는 「다묘가정 완전 가이드」에서 더 자세히 다뤘다.
같은 것을 쓰지만, 모두 똑같이 쓰는 것은 아니다
집 안에는 세 곳에 물을 두고 있다.
호두와 고양이들은 모두 같은 음수대를 사용한다.
호두는 대개 고양이들보다 먼저 식사를 끝내지만, 다른 고양이의 밥을 빼앗아 먹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랭이가 더 어렸을 때 호두의 밥을 먹으려 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식사를 시작할 때면 노랭이가 거의 습관처럼 호두의 밥그릇에 코를 들이대는 경우가 있다. 호두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모든 자원을 아무 관리 없이 같이 쓰게 두는 것은 아니다.
현재 칸트와 후쿠는 자연스럽게 캣타워를 식사 자리로 선택해 그곳에서 먹고, 노랭이는 별도의 공간에서 밥을 먹는다.
노랭이는 자기 식사를 빨리 끝낸 뒤 다른 고양이의 음식을 먹으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식사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각 아이가 자신에게 정해진 양을 제대로 먹었는지 살펴야 한다.
아이들이 모두 밥을 먹고 정리까지 마치면 피곤함을 느낄 때도 있다.
공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무조건 공유하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써도 문제가 없는 것은 함께 쓰고, 누군가의 필요를 보호하기 위해 분리가 필요한 것은 관리해야 한다.
그것도 결국 함께 사는 방식의 일부다.
가까이 지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호두와 네 고양이 사이에는 눈에 띄는 서열이나 편애 관계가 없다.
호두가 특별히 좋아하는 고양이도, 특별히 싫어하는 고양이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각 고양이가 호두와 거리를 두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후쿠는 가장 적극적으로 호두에게 몸을 접촉한다.
산책에서 돌아온 호두에게 다가가 몸을 비비거나, 밥을 기다릴 때 옆에서 얼굴을 부빈다.
노랭이는 후쿠처럼 호두에게 특별히 관심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호두에 대한 경계가 거의 없다. 가까이에서 낮잠을 잘 때도 많다.

화이티는 다르다.
일부러 호두에게 찾아가 몸을 비비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가까운 거리에서 불편함을 느끼면 앞발로 호두에게 경고하기도 한다. 특히 식사를 기다리며 서로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그런 모습이 나타날 때가 있다.
그럴 때 호두는 맞서기보다 피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제 이 차이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쿠가 호두에게 몸을 부비는 관계도 괜찮고, 화이티가 호두와 거리를 두는 관계도 괜찮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친해질 필요는 없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 관계 때문에 누군가의 일상이 계속 방해받고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주되,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개입한다
현재 나는 호두와 고양이들의 관계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호두가 가끔 칸트나 노랭이에게 마운트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고,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흥분해서 고양이를 쫓을 때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행동이 보이면 바로 말로 제지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호두를 안아서 멈추게 했다.
지금은 먼저 고양이들의 반응을 본다.
호두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동을 모두 막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 동물이 그것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명백하게 원하지 않는 반응을 보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때는 호두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 보호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처벌이라기보다 서로의 자유가 충돌했을 때 보호자가 하는 중재에 가깝게 생각한다.
호두도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자유가 있다.
고양이들에게도 원하지 않는 접촉에서 벗어날 자유가 있다.
한 동물의 자유가 다른 동물의 선택을 계속 침해하기 시작한다면, 그 균형을 조정하는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있다.
결과가 좋았다고 당시의 합사까지 잘한 것은 아니었다
호두와 칸트의 첫 합사를 돌아보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다.
가장 먼저 충분한 크기의 케이지를 마련한 일이다.
사람이 계속 지켜보지 않아도 칸트를 물리적으로 보호할 수 있었고, 동시에 호두와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을 먼저 막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서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다시 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훨씬 다르게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칸트가 호두 냄새에 먼저 익숙해질 수 있도록 호두가 사용하던 담요를 이용하는 방법부터 시도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알려진 합사 방법을 먼저 충분히 공부했을 것이다.
호두와 칸트 사이에는 결과적으로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칸트는 지금도 호두를 무서워하거나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둘은 긴장을 풀고 가까이에서 잠을 잘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내가 합사를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두 동물의 성격이 크게 충돌하지 않았고, 운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운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 사실은 후쿠가 들어왔을 때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칸트와 후쿠의 관계 역시 처음에는 좋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 과정 이후 칸트에게는 이전과 다른 모습도 나타났다.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칸트와 후쿠가 처음 만났을 때의 반응과 이후 관계 변화는 「칸트와 후쿠의 합사 기록」에서 따로 자세히 기록했다.
그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다.
후쿠와의 합사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그 경험을 통해 한 가지는 더 강하게 생각하게 됐다.
동물은 자신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내가 한 선택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말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리고 돌봄의 결과는 언제나 즉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과정까지 괜찮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믿게 됐다.
돌봄을 운에 맡기지 않는 것.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위험을 먼저 살펴보고 필요한 준비를 하는 것.
지금의 나는 그것도 보호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잘 함께 산다’는 것
처음 호두와 칸트를 함께 살게 할 때 나는 두 동물이 싸우지 않는지를 걱정했다.
지금은 조금 다른 것을 본다.
누군가가 물을 마시러 갈 때 다른 동물 때문에 망설이지 않는가.
쉬고 싶은 자리가 있는가.
원하면 상대와 거리를 벌릴 수 있는가.
다른 동물이 가까이 왔을 때 언제나 긴장해야 하는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을 때 각자 자기 일을 할 수 있는가.
우리 집의 호두와 고양이들은 대부분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호두는 현관 밖을 바라보고, 고양이들은 창가와 높은 곳에서 밖을 본다.
누군가는 자고, 누군가는 돌아다니고, 누군가는 햇볕을 쬔다.
때때로 몸을 붙이고 자지만 대부분은 굳이 그러지 않는다.
나는 이제 이런 무관심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자원을 사용할 수 있고, 물러날 곳이 있으며, 상대 때문에 자신의 생활을 계속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라면, 서로를 끊임없이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은 잘 함께 살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평화롭게 보이는 현재의 모습도 처음부터 저절로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필요하면 보호자가 개입해야 하고, 각 동물이 불편해하는 신호를 계속 관찰해야 한다.
나는 이제 강아지와 고양이가 잘 함께 산다는 것을 서로를 좋아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방식으로 살아도 되는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가까워질 수도 있고 물러날 수도 있으며, 서로의 일상을 계속 방해하지 않는 상태.
그리고 그 균형이 깨질 때 사람이 책임 있게 개입하는 것.
호두와 네 고양이를 보면서 지금 내가 생각하는 공존은 그런 모습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