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사이에 정말 서열이 있을까? — 다섯 고양이의 행동을 보며 다시 묻다
우리 집 고양이 다섯 마리에게 굳이 서열 순위를 매기라고 하면, 나는 크게 망설이지 않고 칸트를 1위에 올리겠다. 후쿠와 노랭이, 화이티가 공동 2위, 막내 데이비드가 3위가 되겠다.
나름의 근거도 있다. 칸트는 노랭이와 화이티, 데이비드에게 하악질을 하고 때로는 앞발을 날린다. 그 반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른 고양이가 칸트에게 앞발을 드는 것은커녕 하악질 한 번 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칸트가 내킬 때 함께 노는 드문 경우를 빼면, 노랭이와 화이티, 데이비드가 먼저 칸트에게 다가가 몸을 대는 일도 이제는 거의 없다. 칸트의 거부 의사를 확실히 이해했기 때문이리라. 누구와 얼마나 가까이 지낼지 고르는 쪽은 칸트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순위표를 들고 밥때를 지켜보면 금세 이상한 장면들이 나타난다. 서열 1위라는 칸트가 자기 밥그릇에 달려드는 노랭이에게 그릇을 내주고 자리를 뜬다. 이사 오기 전에는 아직 어렸던 후쿠가 칸트가 먹고 있던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대며 음식을 요구해도, 칸트는 아무 경고 없이 비켜 주었다. 그 후쿠는 지금 막내 데이비드가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밀면 순순히 물러난다. 그러면서도 쉬고 있을 때 데이비드가 장난을 걸어오면 하악질을 한다.
그러니 위의 순위표는 내가 겉으로 본 인상일 뿐이다. 고양이 사이에 정말 서열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고양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관찰하면 할수록 결론을 내기 어려워진다. 적어도 사람 사이의 서열과는 그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
이 글은 그 물음을 들고 우리 집 고양이 다섯 마리와 골목 고양이들의 행동을 다시 들여다본 기록이다. 여기 적은 관찰로 고양이에게 서열이 있다거나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다만 몇 장면을 모아 한 줄짜리 순위표를 만드는 일이 무엇을 놓치는지는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다.

칸트가 하악질하는데도, 왜 칸트가 자리를 떠날까?
칸트는 후쿠를 빼면 다른 고양이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 노랭이와 화이티가 처음 집 안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랬다. 내 눈에 칸트는 두 아이를 홀대했다. 가까이 다가오면 하악질을 했고, 그래도 곁을 떠나지 않으면 앞발을 들어 펀치를 날렸다. 성격 좋은 노랭이는 칸트에게 관심을 보이며 몇 번이고 다가갔지만, 돌아온 대답은 번번이 하악질이었다. 반대로 후쿠는 노랭이, 화이티와 한 공간에 있게 된 첫날부터 둘과 뛰어다니며 놀았다. 노랭이와 화이티가 마당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이야기는 길고양이를 집에 들이기까지에 적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가까이 다가온 노랭이와 화이티, 데이비드에게 하악질에 앞발 경고까지 하던 칸트가 그 자리를 끝까지 주장하는 일은 드물었다. 대개는 칸트가 일어나 다른 고양이들이 없는 곳으로 옮겨 갔다.
그렇다고 칸트가 자리를 빼앗긴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칸트가 충돌을 피해 그 자리를 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호의는 아니었다. 불쾌감의 표현에 가까워 보였다. 사람의 말로 옮기면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정도의 뉘앙스랄까.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면, 노랭이나 화이티가 칸트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행동도 나는 보지 못했다. 내 눈에 두 아이는 칸트를 의식해서라기보다 그쪽으로 갈 일이 있어서 간 것처럼 보였다. 칸트로서는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밖에서 보기에는 빼앗고 빼앗기는 일이라기보다, 노랭이와 화이티의 동선에 칸트가 있었고, 칸트는 가까이 온 상대가 불편해서 스스로 피한 것에 가까웠다.
실제로 우리 집에서 한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의 잠자리나 쉬는 자리를 빼앗는 모습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고양이마다 좋아하는 자리가 있지만 특정 고양이의 것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아서 다른 고양이들도 쓰고, 누가 먼저 차지하고 있으면 빼앗지 않는다. 길목을 가로막거나 물그릇과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일도 지금까지 없었다.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함께 살며 생긴 내 직관적인 판단이다.
요즘은 칸트도 조금 누그러졌다. 노랭이와 화이티, 그리고 노랭이의 동생 데이비드를 대하는 칸트의 긴장이 처음보다 다소 풀렸다고 느낀다. 내가 깔아 둔 이불 위에서 칸트와 노랭이, 데이비드가 함께 잠드는 일도 꽤 있다. 보통은 칸트가 누워 있으면 노랭이와 데이비드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칸트는 그대로 누워 있다. 서로의 거리는 대략 50cm가 넘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는 우리 집 고양이들이 서로의 공간을 존중한다고 느낀다. 다만 음식만은 예외다.
하악질해도 빼앗기는 칸트의 밥 — 서열표의 첫 번째 균열
칸트는 밥을 아주 천천히 먹는다. 내 체감으로는 다른 고양이들보다 세 배쯤 느리다. 노랭이는 정반대다. 자기 몫을 놀라울 정도로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는 아직 먹고 있는 칸트의 밥그릇으로 간다. 내가 막지 않으면 그대로 머리를 처박고 먹는다.
칸트가 하악질을 하며 앞발로 노랭이의 머리를 때려도 노랭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맞으면서 계속 먹는다. 내가 즉시 끼어들지 않으면 결국 칸트가 밥그릇을 포기하고 떠나 버린다. 이 장면은 지금도 변함없이 되풀이된다. 칸트가 다른 자리에서 노랭이에게 경고하는 일과 노랭이가 칸트의 밥을 노리는 일은 같은 날에도 따로따로 일어난다.

서열표로 보면 이상한 장면이다. 칸트가 정말 1위라면 왜 자기 밥을 지키지 못할까. 자기보다 약하다고 여기는 노랭이에게 제 몫을 양보하는 걸까? 글쎄다. 그것이 양보라 해도 칸트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노랭이 쪽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노랭이는 다른 고양이의 밥그릇에도, 심지어 호두의 밥그릇에도 입을 댄다. 그런데 누군가를 위협하며 먼저 먹을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하악질을 들어도, 앞발에 맞아도 그냥 먹는다. 나는 이 행동을 서열이나 우선권 주장으로 읽을 수 없다. 더 먹고 싶어서 다른 그릇에 입을 대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데이비드까지 보태면 그림은 더 복잡해진다. 데이비드도 자기 밥을 먼저 다 먹으면 다른 고양이의 밥그릇 쪽으로 가지만, 노랭이처럼 과감하지 않고 주저할 때가 많다. 실제로 머리를 대고 먹으려 하는 그릇은 주로 노랭이의 것이다. 노랭이를 편하게 여겨서 그런 것 아닐까 짐작한다. 반면 늦게까지 먹고 있는 칸트의 밥그릇 근처에 가면 칸트가 하악질을 하고, 데이비드는 대개 망설이다가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간다. 다른 고양이들의 그릇에도 상대가 비켜 주지 않는 한 감히 머리를 들이밀지 못하고 주변만 맴돈다. 데이비드가 좀 더 크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이 장면들을 한 줄로 세워 보면 혼란스러워진다. 칸트의 하악질에 데이비드는 대개 물러나지만 노랭이는 물러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칸트의 그릇에는 머리를 대지 못하면서 노랭이의 그릇에는 머리를 댄다. 그리고 노랭이는 칸트의 밥을 먹는다. 누가 누구보다 위인지를 한 줄로 세우려 하면 어딘가에서 순서가 꼬인다. 밥그릇 앞의 관계는 사다리라기보다 고양이 두 마리마다 따로 그어진 선에 가깝다.
식사 시간의 이 장면과 내가 끼어드는 방식은 다묘가정 가이드: 여러 고양이가 안정적으로 함께 살기 위한 기본 구조에서도 다뤘다. 여기서는 그 장면이 서열이라는 말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지만 보려 한다.
어린 후쿠에게는 양보했던 칸트, 데이비드에게는 물러나는 후쿠
이사 오기 전, 후쿠가 아직 어렸을 때다. 후쿠는 자기 밥을 다 먹고 나면 칸트가 먹고 있는 밥그릇이나 간식에 입을 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칸트는 후쿠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노랭이에게 하듯 하악질을 하거나 화를 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걱정한 쪽은 나였다. 칸트와 후쿠가 처음 만나 가까워진 과정은 칸트와 후쿠의 합사 이야기에 적었다.
지금의 후쿠는 그때의 칸트와 비슷한 자리에 서 있다. 후쿠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노랭이나 데이비드가 그릇에 머리를 대면, 후쿠는 뒤로 빠져 거의 주저 없이 근처의 냉장고 위로 뛰어올라, 냉장고와 책장을 잇는 널빤지 가운데쯤에 가 있다. 배가 불러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릇을 되찾아 냉장고 위에 올려 두면, 후쿠는 남은 사료를 다시 먹기 시작한다. 식욕을 잃은 것도, 밥그릇에 미련을 버린 것도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장하지 않고 그냥 내줄 뿐이다.
이런 후쿠의 모습은 노랭이와 화이티가 집에 오기 전에는 본 적이 없다. 칸트는 후쿠의 밥을 빼앗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고양이와 부딪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쿠의 속을 내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쉬고 있을 때의 후쿠는 다르다. 아직 어린 데이비드가 철없이 후쿠의 자리에 끼어들거나 지나치게 몸을 대며 장난을 치면, 후쿠는 하악질을 한다. 데이비드가 함께 살기 전에는 후쿠의 하악질을 나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후쿠와 데이비드는 함께 잠들기도 한다. 내 눈에 후쿠는 데이비드를 조금 만만하게 보는 것 같고, 이제는 꽤 편안하게 여기는 것 같다.

밥그릇 앞에서는 데이비드에게 물러나는 후쿠가 쉬는 자리에서는 데이비드에게 하악질로 경고한다. 같은 두 고양이 사이에서도 무엇을 두고 마주쳤느냐에 따라 후쿠의 반응이 달라진다. 칸트도 그렇다. 어린 후쿠에게는 말없이 밥그릇을 비켜 주던 칸트가 노랭이에게는 하악질과 앞발로 맞선다.
데이비드가 들어온 뒤, 다섯 고양이는 어떻게 다시 관계를 맺었을까?
데이비드는 노랭이의 동생이다. 노랭이를 낳은 어미가 그다음 임신으로 2026년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낳은 새끼다. 데이비드는 처음 한동안 다른 고양이들과 떨어진 방에서 지냈고, 병원에서 질병 검사를 받아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격리를 풀었다.
노랭이는 데이비드가 방에 격리되어 있을 때부터 유난히 관심을 보였다. 격리가 풀려 데이비드가 방 밖으로 나오자 둘은 바로 가까워졌다. 데이비드는 거의 늘 노랭이를 따라다녔고, 노랭이는 데이비드를 그루밍해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둘은 씨름을 하며 놀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형과 철없는 동생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둘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다만 둘이 형제라서 그렇게 빨리 가까워졌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화이티와는 시작이 달랐다. 처음에 화이티는 데이비드가 아주 가까이 오면 피하거나 하악질을 할 때가 많았고, 나는 그것이 걱정되었다. 데이비드는 화이티를 크게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화이티가 하악질을 하면 그 자리를 비켜 주곤 했다. 지금 둘은 함께 낮잠을 자고 서로 그루밍을 해 주기도 한다. 서로 편하게 여기고, 서로 위협하지 않는다.
처음의 하악질이 그들 관계의 결론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사이 노랭이와 화이티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예전보다 줄었다. 두 아이는 지금도 함께 낮잠을 자고 그루밍을 해 주지만, 노랭이가 데이비드와 어울리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가 온 뒤 지금까지만 봐도 관계는 이만큼 움직였다. 어느 한 시점에 매긴 순위표나 그때 본 관계의 모습이 오래 들어맞기 어려운 이유다.
길고양이들 사이에도 한 줄짜리 서열이 보였을까?
우리 집 마당에는 밥을 먹으러 오는 동네 고양이들이 있다. 밥을 주게 된 과정과 그 일상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것들에 적었다. 이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한 줄짜리 서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수컷들이 자기보다 작은 암컷을 위협하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자유분방하고 자신감 넘치는, 말하자면 동네 PTA 회장 격인 노랭이 엄마가 화이티 아빠나 노랭이 아빠에게 신경질을 낼 때가 있었다. 발정기 무렵이라 그랬는지 수컷들은 노랭이 엄마 앞에서 꼼짝도 못했다. 힘의 차이는 분명해 보였지만 특별한 서열은 보이지 않았다.
이 골목의 3대 수컷인 화이티 아빠와 노랭이 아빠, 윗집에 사는 뻔뻔이 사이의 순위도 나는 정확히 모른다. 셋 가운데 가장 나이 들어 보이고 험상궂게 생긴 화이티 아빠가 다른 고양이를 위협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반면 귀엽게 생기고 사람을 잘 따르는 뻔뻔이는, 다른 곳에 사는 정말 험상궂게 생긴 고양이가 윗집에 찾아왔을 때 그 고양이와 험하게 싸웠다. 그때 나는 사람이 보고 느끼는 고양이의 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 관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내가 골목 고양이들을 보는 시간은 대부분 밥을 주는 때의 앞뒤이고, 그들이 굶주렸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보지 못했다. 노랭이 엄마와 수컷들의 장면도 발정기 무렵의 일이다. 나는 이 골목의 평화가 서열로 정해진 힘의 균형보다는, 영역과 자원을 침해당할 때만 힘을 쓰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전략적으로 물러서는 데서 유지된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내 해석이다. 고양이들이 왜 싸우고 왜 물러서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새끼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고 장난을 걸어도 가끔은 그냥 받아 주는 힘센 수컷 고양이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고양이에게 서열이 없다는 뜻일까? — 과학이 말하는 유연한 사회관계
나는 고양이를 무리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동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고양이수의사회(AAFP)가 2024년에 낸 고양이 간 긴장 관리 지침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지침에 따르면 고양이의 사회 체계는 유연하고 다양하다.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와 가까운 유대를 맺을 수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 그 관계에 기대야 하는 동물은 아니다. 혼자 살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도, 무리 속에서 사는 쪽을 좋아하는 고양이도 있다. 무리를 짓지 않는 동물이라기보다 무리를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는 동물에 가깝다. 지침은 또 바깥 고양이와 달리 집 안의 고양이 무리는 보호자가 고른 것이어서, 유대로 묶인 무리가 아니라 그저 한집에 사는 사이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골목 고양이들의 모습을 집 안 고양이들에게 그대로 옮겨 올 수 없는 이유다.
서열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바깥 고양이 무리에서 누가 누구보다 예측 가능하게 먼저 차지하느냐로 정의된 서열이 관찰된 적은 있다. 하지만 그 서열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고양이 사회를 조직하는 바탕이 아니라 관계에서 생겨난 결과다. ‘지배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고양이는 실제로는 다른 고양이보다 더 활동적이거나 호기심이 많을 뿐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집 안 고양이들 사이의 긴장이 서열을 세우려는 다툼 때문에 생긴다는 증거는 없다. 긴장은 대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나, 새 고양이의 합류, 통증과 질병처럼 관계를 흔드는 일에서 생긴다.
이 설명은 우리 집 장면들을 읽는 몇 가지 기준이 된다. 다만 지침이 우리 집 고양이들의 서열을 판정해 주지는 않는다.
첫째, 하악질 한 번을 관계 전체로 읽지 않는다. 지침은 고양이들이 하악질 같은 분명한 신호로 그 자리의 갈등을 끝내는 일이 흔하고, 가끔 짧게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동시에 자리를 떠나는 것 같은 조용한 행동도 긴장의 신호일 수 있다고 본다. 칸트가 자리를 뜨는 모습을 내가 불쾌감의 표현으로 읽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 친밀함과 견딤을 구분한다. 몸을 붙이고 자거나 서로 그루밍하는 것이 친밀한 관계의 신호이고, 같은 가구 위에서 몸이 닿지 않게 자는 고양이들은 친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불 위에서 50cm 넘게 떨어져 자는 칸트와 노랭이, 칸트와 데이비드는 친하다기보다 서로를 견디며 같은 자리를 나눠 쓰는 사이일 수 있다. 지침은 그런 관계도 받아들일 만한 결과로 본다. 다만 노랭이와 데이비드는 칸트의 비호의적인 신호를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셋째, 밥그릇 앞의 장면은 먼저 자원의 문제다. 지침은 같은 무리에 속한 친한 고양이들도 밥은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로 먹이라고 권한다.
결국 지침이 말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서열은 없다’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누가 먼저 원하는 자원을 차지하는지가 예측 가능하게 나타날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은 고정된 계급이 아니고, 집 안에서 생기는 긴장을 설명하는 열쇠도 아니라는 것이다.
서열을 정하기보다, 무엇을 살펴봐야 할까?
지침은 고양이들끼리 알아서 해결하게 내버려 두지도 말고, 억지로 친하게 만들려고 하지도 말라고 한다. 대신 자원이 지금 어떻게 놓여 있는지, 그 배치가 긴장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라고 한다.
우리 집에서 내가 끼어드는 경우는 거의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한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의 밥을 빼앗아 먹을 때다. 다른 하나는 호두가 노랭이나 칸트에게 장난을 심하게 친다고 판단될 때다. 그 밖에는 끼어들 일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밥은 다르다. 칸트와 후쿠는 하악질을 하든 하지 않든 결국 밥그릇을 내주고 떠난다. 그대로 두면 제 몫을 다 먹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노랭이나 데이비드가 남의 그릇에 머리를 대면 막고, 이미 빼앗긴 그릇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
지침의 설명과 우리 집의 경험을 합쳐 보면, ‘누가 대장인가’보다 진짜 쓸모 있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다가가고 물러나는가. 같은 두 고양이라도 밥그릇 앞과 쉬는 자리에서 다를 수 있다.
누군가 밥과 물, 화장실, 쉬는 자리를 쓰다가 그만두거나 피하는 일이 되풀이되는가. 하악질이 있었는지보다 실제로 무엇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쫓고 쫓기는 놀이에서 서로 역할이 바뀌는가, 아니면 한쪽만 계속 쫓기고 숨는가.
시간이 지나며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한두 번의 장면보다 몇 주, 몇 달의 흐름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밥을 따로 주는 구체적인 방법과 고양이 사이의 긴장을 알아차리는 신호는 다묘가정 가이드: 여러 고양이가 안정적으로 함께 살기 위한 기본 구조에 정리해 두었다.
고양이들의 서열이 정말 있는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칸트가 다른 고양이들에게 하악질을 하고 다른 고양이들은 칸트에게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하지만 그 사실 하나로는 칸트가 노랭이에게 밥그릇을 내주고 떠나는 일도, 밥그릇을 두고 냉장고 위로 올라가면서도 쉬는 자리에서는 데이비드에게 하악질하는 후쿠도 설명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정도다. 우리 집 안의 고양이들도, 골목의 고양이들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평화롭게 공존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