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것들

시골집 현관 앞에서 각자의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먹는 고양이 여섯 마리

새벽 5시 50분, 나는 스테인리스 그릇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몇 번 부딪친다. 밥 먹으라는 신호다. 사실 그 신호가 필요한 고양이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이미 현관 앞 처마 밑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 그 앞에 밥그릇 열한 개를 늘어놓고, 널찍한 스테인리스 바트에 새 물을 채운다. 이 일을 하루 세 번 한다. 마당에 사는 몇몇 아이에게는 아침과 밤에 한 끼씩 더 낸다. 다른 골목에 사는 고양이가 밥때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릇을 들고 찾아가기도 한다.

처음부터 이런 생활을 계획한 것은 아니다.

올해 3월 초만 해도 마당을 지나는 고양이에게 칸트와 후쿠의 사료를 조금 덜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릇은 작은 공용 그릇 하나였고, 정해진 시간도 없었다. 3월 15일에 산 20kg짜리 길고양이 사료 한 포대가 거의 바닥나 다음 포대를 주문한 것은 5월 30일이었다. 지금은 같은 포대가 보름 남짓이면 빈다.

그사이 내 하루의 시간표가 바뀌었고, 마당의 고양이들과 나 사이의 거리도 바뀌었다. 걱정이 늘었고, 답하지 못한 질문도 생겼다. 이 글은 그 일곱 달 남짓의 기록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라고 권하려는 글도, 말리려는 글도 아니다. 시골 동네에서 밥을 주기 시작한 한 사람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적으려 한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가끔 밥을 주었다

2026년 2월 27일, 지금의 시골집으로 이사했다. 이전 세입자는 주말에만 가끔 들렀다고 하니, 이 집은 오랫동안 사실상 빈집이었던 셈이다. 빈집에는 흔히 고양이가 깃들어 산다. 그런데 이 집에는 고양이가 마음 놓고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다. 마당과 텃밭은 놀다 가거나 잠깐 쉬어 가기에는 괜찮아도, 경계를 풀고 잠들 만한 자리는 아니다. 가끔 마당을 가로지르는 고양이들을 보면서도, 나는 이곳이 그들의 거처라기보다 고양이들이 오가는 길목쯤이었으리라고 짐작했다.

칸트와 후쿠에게 그 길목은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둘은 이사 온 첫날부터 창문을 찾아다니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마당을 지나는 고양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밖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면 귀를 곤두세웠다. 이사 전부터 기대했던 장면이다. 시골집이 실내 고양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엔터테인먼트는 창밖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내주기 시작한 것은 3월 초다. 첫날이 언제였는지는 모른다. 그만큼 대수롭지 않게 시작했다. 고양이가 오면 칸트와 후쿠의 사료를 조금 덜어 주었고, 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남아 있는 가장 이른 기록은 3월 16일의 영상이다. 영상에는 고양이 네 마리가 보인다. 노랭이 엄마와 노랭이 아빠, 다온이의 엄마 짹순이는 분명하고, 나머지 한 마리는 아마 이쁜이일 것이다. 다만 이 영상은 그 무렵의 급식 모습을 보여 줄 뿐, 급식이 시작된 날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노랭이와 화이티도 3월 초부터 알고 있었다. 3월 13일, 친구들이 놀러 와 마당에서 바비큐를 굽고 있을 때 노랭이가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졸랐다. 그런데 내 사진첩에 노랭이와 화이티가 처음 등장하는 날은 3월 17일이다. 그전에는 굳이 사진을 찍을 만큼 두 아이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찍었다가 지웠을 리는 없다. 특별하게 여겼다면 사진을 찍었을 것이고, 사진을 찍었다면 틀림없이 가족들에게 보내며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테니까.

두 아이가 마당에서 밤을 보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기억을 더듬으면 3월 8일 전후부터 가끔 마당에서 잤고, 12일 전후부터는 아예 눌러앉았다. 처음 잠자리는 내가 만들어 준 종이 상자였다. 화이티는 노랭이 곁을 떠나 따로 자는 법이 없었다. 밤공기는 아직 찼다.

3월 19일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나는 우리 집에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가 대략 일곱 마리라고 썼다. 노랭이, 화이티, 짹순이, 노랭이 엄마, 노랭이 아빠는 거의 확실하고, 나머지 둘은 핑크 예쁜이와 그 엄마였을 것이다. 같은 메시지에 노랭이의 사진을 붙이고, 이 녀석을 키울까 고민 중이라고도 적었다.

영하처럼 느껴지는 3월의 시골 밤이 걱정되어, 3월 18일 길고양이용 겨울집을 주문했고 20일에 받아 현관 앞에 놓았다. 노랭이는 그곳에서 자주 쉬고 잠을 잤다. 화이티는 혼자서는 겨울집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밤늦게 호두의 마지막 산책을 마치고 들어올 때나 새벽에 내다보면, 화이티는 어김없이 겨울집 안에서 노랭이와 살을 붙인 채 자고 있었다. 노랭이가 어디에 있든 화이티는 결국 노랭이 곁에서 자고 함께 아침을 맞았다. 나는 노랭이를 떠나지 않는 화이티에게, 노랭이에게 느끼는 친밀감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존경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검은색 야외 겨울집 안에 있는 노랭이와 집 밖에 앉아 있는 화이티
3월 20일 설치한 겨울집 안의 노랭이와 밖에 앉아 있는 화이티. 2026년 3월 22일.

화이티가 혼자 있을 때 좋아한 자리는 따로 있었다. 겨울집 앞에 둔 캠핑 의자 위, 접어 올린 러그였다. 처마 밑에 세워 둔 자전거 두 대의 방수 커버 아래 시멘트 바닥도 둘의 쉼터였다. 나중에 그 안쪽에 러그와 천을 깔아 주었더니, 두 아이는 겨울집과 방수 커버 안을 번갈아 골라 잤다. 비가 오면 자전거 밑으로 빗물이 들이쳐 천이 젖었는데, 그런 날이면 둘은 알아서 겨울집으로 들어갔다.

실외기 위에 깔린 푹신한 러그에서 나란히 쉬고 있는 노랭이와 화이티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 야외에 마련한 러그에서 나란히 쉬는 노랭이와 화이티. 2026년 4월 1일.

노랭이가 아프면서 밥을 주는 일이 달라졌다

그 무렵에도 찾아오는 고양이에게는 그때그때 밥을 내주었다. 그러나 노랭이와 화이티에게는 대접을 달리했다. 우리 마당에 사는 아이들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노랭이가 마음에 걸렸다. 화이티보다 몸집이 훨씬 작고 말랐고, 기침을 했다. 그러던 중 이웃집 부인에게서 노랭이의 형제들이 노랭이와 똑같은 기침을 하다 하나둘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직접 본 일은 아니다. 그래도 그 말을 들은 뒤로 두 아이의 밥만큼은 칸트, 후쿠와 같은 수준으로 챙겼다. 이유야 어떻든, 두 아이는 이미 나에게 특별했다.

3월 말, 계속 기침하는 노랭이를 읍내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노랭이는 항생제 주사를 맞고 한동안 먹일 약을 처방받았다. 수의사는 잘 먹여서 살을 찌워야 한다고 했다. 정상 체중에 이르러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3월 29일에는 두 아이에게 기생충과 심장사상충을 함께 막는 바르는 약을 처음 발라 주었다. 당시 체중을 두고 수의사와 상의해 고른 1.2~2.8kg용 브라벡토 플러스였다. 4월 1일에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이웃 도시의 다른 동물병원에 가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전염성 질병을 확인하는 피검사를 하고 노랭이의 기침 진료도 받았다.

약을 먹이려면 식사가 규칙적이어야 했다. 게다가 맛이 강한 항생제 가루를 건사료와 함께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루 두 번 국물을 만들고, 거기에 약을 섞어 불쾌한 약맛을 감췄다. 노랭이의 체중을 늘리려면 끼니를 거를 수도 없었다. 화이티는 늘 노랭이 곁에 있었으니 함께 먹었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주는 일은 이렇게 아픈 고양이 한 마리에게서 시작되었다.

문제는 밥 먹는 모습이 감춰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노랭이와 화이티가 밥을 먹는다는 사실은 곧 동네 고양이들 사이에 ‘눈소문’이 났다. 두 아이가 먹는 동안 주변에서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녀석들을 모른 척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하나둘 건사료를 내주다 보니 찾아오는 고양이가 늘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규칙적인 급식이라고 할 수 없었다. 조를 때만 마지못해, 현관 앞 처마 밑 턱에 작은 그릇으로 사료를 놓아 주는 정도였다. 3월 중순에 산 사료 한 포대로 5월 말까지 버텼으니 말이다.

다른 고양이들에게 선뜻 규칙적으로 밥을 주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불편해하면 내가 미움을 살 수도 있다는 아내의 걱정이 있었고, 고양이들이 내 밥에 기대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내 마음도 있었다. 이 두 번째 걱정은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다.

노랭이와 화이티는 그 뒤로 많은 일을 겪었고, 4월 29일부터 집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산다. 5월 15일에는 둘 다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두 아이가 마당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이야기는 「길고양이를 집에 들이기까지」에 따로 적었다.

다른 고양이들에게도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주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5월 14일, 현관 앞에서 처음으로 ‘고양이의 보은’을 발견했을 무렵에는 이미 밥 주는 일이 일과였다. 5월 초 무렵부터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하루 세 번, 열한 개의 밥그릇을 준비한다

아래는 2026년 10월 현재의 모습이다. 우리 동네 고양이들과 내 생활에 맞춰 자리 잡은 방식일 뿐, 누구에게나 권할 표준은 아니다.

정해진 급식 시간과 추가 식사

정규 급식은 하루 세 번, 05:50과 13:00, 18:00이다. 한 끼에 가장 많이 모인 고양이가 열한 마리여서 밥그릇도 열한 개를 준비한다. 늘 열한 마리가 오는 것은 아니다. 아침과 저녁에는 대개 아홉에서 열 마리, 점심에는 여덟에서 아홉 마리가 온다. 이 숫자는 한 끼에 우리 집 급식 자리에 모인 수일 뿐, 이 동네 고양이의 전체 수가 아니다.

시골집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인 스테인리스 밥그릇 열한 개와 곁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
급식을 위해 준비한 열한 개의 밥그릇. 고양이 두 마리도 곁에 와 있다. 2026년 10월 22일.

마당과 그 근처에 사는 네 아이인 노랭이 엄마와 짹순이, 짹순이의 딸 다온이, 혼자 떨어져 사는 새끼 고양이 애기야에게는 두 번을 더 준다. 아침 급식 뒤 호두와 산책을 다녀와서 07:10에 닭·채소 국물에 사료를 조금 섞어 주고, 밤에 호두의 마지막 산책을 마친 21:40에 사료와 간식을 조금 낸다. 우리 집 현관에서 밥이 나오는 횟수는 하루 다섯 번이지만, 모든 고양이가 다섯 끼를 먹는 것은 아니다. 네 아이에게만 더 주게 된 사정은 뒤에서 이야기하겠다. 요즘은 그 넷 가운데 애기야가 오는 날이 들쭉날쭉하다.

국물은 직접 끓인다. 닭가슴살에 양배추, 당근, 애호박 정도를 넣고 끓인 다음, 잘게 찢은 닭고기와 함께 작은 용기에 나눠 얼려 둔다. 아침마다 하나씩 데워 건사료에 섞는다. 소금이나 조미료는 넣지 않는다. 이사 오기 전 한 번 실수한 뒤로, 고양이에게 해로운 음식은 꼼꼼히 가린다. 양파, 마늘, 파처럼 고양이에게 해롭다고 알려진 채소도 물론 넣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 국물을 아주 좋아한다. 가끔은 지난 8~9월 무렵 생후 4주쯤으로 보이던 새끼 고양이 브라운과 그레이를 잠시 보호했을 때 사 두었다가 남은 신생아용 고양이 분유를 섞어 맛을 바꿔 주기도 한다. 둘은 이튿날 어미를 찾아 돌려보냈다. 그 이야기는 따로 쓰고 싶을 만큼 나에게 각별하다.

밥을 들고 찾아가는 곳도 두 군데 있다. 이쁜이는 건너편 골목 위쪽,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의 지붕에서 지내는 암컷 고양이다. 내가 아주 아끼는 아이다. 밥때에 이쁜이가 우리 집에 오지 않으면 내가 찾아간다. 아침에는 06:20쯤 호두와 산책하는 길에 들르고, 점심에는 13:10쯤 우리 집 급식을 마치자마자 가서 그릇을 씻고 밥을 준다. 저녁은 18:10쯤이다.

우리 골목에는 집이 네 채 있는데, 맨 위 이웃집에도 고양이 세 마리가 산다. 핑크 예쁜이와 핑크 예쁜이 엄마, 그리고 수컷 뻔뻔이다. 그 집은 점심과 저녁에는 사료를 주지 않는다. 셋 다 우리 집에 올 때도 있지만, 오지 않는 날도 있다. 최근 새끼를 낳은 핑크 예쁜이 엄마는 그래도 밥을 먹으러 내려온다. 오히려 잘 오지 않는 쪽은 핑크 예쁜이다. 밑의 골목 고양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조금 불편한 모양이다. 가끔은 아예 내려오지 않고, 내가 골목 윗집으로 올라와 밥을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에 이쁜이에게 가는 길에 그 집 밥그릇에도 사료를 채우고, 물통을 씻어 물을 갈아 준다.

하루를 정리하면 이렇다.

시간장소대상내용
05:50우리 집 처마 밑오는 고양이 모두 (대개 9~10마리)아침
06:20이쁜이가 지내는 집이쁜이호두 산책길에 사료 (이쁜이가 오지 않았을 때)
07:10현관 앞노랭이 엄마·짹순이·다온이·애기야닭·채소 국물 + 사료 조금
13:00우리 집 처마 밑오는 고양이 모두 (대개 8~9마리)점심
13:10이쁜이 집, 골목 윗집이쁜이, 윗집 고양이들그릇 세척 후 점심 (이쁜이가 오지 않았을 때)
18:00우리 집 처마 밑오는 고양이 모두 (대개 9~10마리)저녁
18:10이쁜이 집, 골목 윗집이쁜이, 윗집 고양이들저녁 (이쁜이가 오지 않았을 때)
21:40우리 집 처마 밑노랭이 엄마·짹순이·다온이·애기야사료와 간식 조금

사료와 물, 그릇의 관리

주요 급식 자리는 내가 사는 집 입구의 처마 밑이다. 스테인리스 밥그릇 열한 개를 늘어놓고, 공용 물그릇은 구석에 둔다. 물그릇은 얼마 전까지 세숫대야만 한 통이었는데, 10월 21일 아침부터 생활용품점에서 5,000원에 산 널찍한 스테인리스 바트로 바꿨다. 더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고, 낮고 넓어서 새끼 고양이들도 마시기 편하다. 점심 무렵 처마 밑까지 해가 들면 이 물그릇만 길가 그늘로 옮긴다.

밥을 주고 한 시간쯤 지나면 그릇마다 남은 사료를 한데 모아 버리고, 그릇을 모두 거둬 씻어 말린다. 밥을 세 번 주니 설거지도 세 번이다. 물은 하루 세 번 갈고, 그 사이에라도 물이 더러워진 것이 보이면 바로 바꾼다. 물을 갈 때마다 급식 자리 근처의 물호스로 물그릇을 헹구고, 하루 한 번 점심 직전에는 수세미로 제대로 닦는다. 세제는 쓰지 않는다.

이쁜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은 하루 한 번, 점심 직전에 씻고 물도 그때 간다. 이쁜이가 먹기 시작하면 나는 참 이쁘다고 말해 주고 자리를 뜬다. 이쁜이의 사료는 대개 남지 않는다. 조금 남은 것은 다음 사료를 주기 전에 버린다. 그 밥은 이쁜이 몫이지만, 이쁜이가 없을 때 다른 고양이가 입을 댔을 수도 있어서다.

참고할 만한 외부 권고도 있다. 미국의 민간 동물보호단체 Alley Cat Allies는 먹지 않은 음식을 30분 안에 치우라고 권한다. 밤새 남겨 둔 음식은 곤충과 다른 야생동물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이유라고 한다. 신선한 물을 주고, 한곳에서 밥을 주며 그 자리를 깨끗하게 유지하라는 권고도 있다. 미국 단체의 권고일 뿐 한국의 법규나 공식 기준은 아니다. 나는 지금 한 시간쯤 뒤에 치운다.

급식에 맞춰 움직이는 일상

이사 온 뒤로 나는 이 집 말고 다른 곳에서 잔 적이 없다. 명절에도 아이들 때문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불효자이자 의도적인 사회 부적응자다. 급식을 거른 날도 거의 없다. 어느새 내 하루는 고양이들의 밥때와 호두의 산책 사이에 끼워져 있다. 아침밥을 내고, 호두와 산책을 나가 이쁜이에게 들르고, 돌아와 네 아이에게 국물을 낸다. 밤에는 호두의 마지막 산책을 다녀와 야식을 낸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오면 밥을 주었다. 이제는 내가 고양이들의 밥때에 맞춰 움직인다.

예전에 살던 도시의 병원에 가거나 가족을 만나러 가는 날이면 아침밥을 조금 일찍 주고, 점심때까지 돌아오도록 일정을 짠다. 그래도 몇 번은 늦었다. 집 안 아이들은 불만이 있어도 티를 잘 내지 않다가, 내가 그릇을 꺼내는 순간 평소보다 더 난리를 친다. 바깥 고양이들은 저마다 다르다. 급식 자리 근처에 누워 조용히 기다리는 녀석도 있고, 자리에 보이지 않는 녀석들도 있다. 기다리다 지쳐 다른 데로 가 버렸을 것이다. 그러다 스테인리스 그릇 부딪치는 소리, 사료 붓는 소리, 먼저 와 있던 고양이들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하나둘 모여든다. 나는 늦은 것을 사과하고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한다. 녀석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래서 요즘은 아직 오지 않은 고양이들에게 알리려고, 밥을 주기 전에 그릇 두 개를 부딪쳐 조그맣게 소리를 낸다. 대부분은 밥때가 되기 전, 이르면 한 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린다. 비 오는 날만 예외다. 비가 오면 오는 고양이가 적다.

밥그릇이 있어도 먹지 못하는 고양이가 있다

나는 고양이를 따로 먹이거나 한데 모아 먹이는 원칙을 따로 두지 않는다. 대신 여러 마리가 먹는 동안 잠시 지켜본다. 다툼이 있는지, 그리고 아무도 차지하지 않은 밥그릇이 남아 있는데도 옆 고양이와 너무 가까워 다가가지 못하는 고양이가 있는지를 본다. 짹순이처럼 무리 밖에 가만히 앉아 있는 고양이가 보이면, 그릇을 들어 그 앞에 옮겨 준다.

밥그릇을 채워 두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준 아이는 애기야다. 애기야는 혼자 사는 새끼 고양이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이 골목의 새끼 고양이들이 거의 모두 죽어 나간 시기에 살아남은 세 마리 가운데 하나다. 나머지 둘은 다온이와 데이비드다.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유난히 많이 운다.

애기야는 경계심이 유난히 강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성묘가 가까이 와도 담 너머로 도망가곤 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아이였다. 아마 아무하고도 코뽀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무렵 다른 새끼들이 죽어 갈 때 애기야도 기침을 했지만, 식욕과 기력을 잃지 않고 결국 살아남았다. 나는 그 고립 덕분에 애기야가 아픈 고양이들과 덜 접촉했고, 그래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애기야는 한동안 우리 집 담장 쪽 마당 근처에서 지냈는데, 며칠 전부터는 옆집 창고로 잠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우리 마당에 사는 노랭이 엄마와 짹순이는 애기야에게 그리 너그럽지 않았다. 이 골목에 살지 않으면서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 두 마리가 집 근처에서 애기야를 위협하는 장면도 몇 번 보았다. 그래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걱정하던 대로 애기야는 다른 곳으로 옮긴 것 같다. 직접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뒤로 애기야는 네 아이에게만 주는 국물 아침과 야식에도 며칠째 나타나지 않았다. 10월 20일 아침에는 정규 급식에 나오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호두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내가 마당에 있자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까? 아침 급식에서 남은 사료를 모아 둔 그릇을 가져다주었지만, 애기야는 주위 눈치만 살폈다. 그때 노랭이 엄마가 다가와 하악질을 했고, 짹순이도 다가와 애기야를 빤히 쳐다보았다. 애기야는 그릇 앞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내가 노랭이 엄마에게 불만을 토하며 가볍게 쫓아내자 그제야 그릇에 입을 댔다. 그날 아침 국물 시간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일은 그날 한 번이 아니다. 요즘 애기야는 다른 고양이들을 더 경계하고, 밥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아예 자리를 피하는 일이 잦다. 그런데 나와의 거리는 오히려 가까워졌다. 내가 곁에 서서 다른 고양이가 다가오지 못하게 하면, 애기야는 여전히 주위를 살피면서도 끝까지 먹는 일이 많다. 내 곁을 조금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내가 있으면 다른 고양이가 덜 다가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애기야가 내 의도를 알고 그러는지는 나도 모른다.

급식 장소 앞쪽에 혼자 앉은 삼색 고양이 애기야와 뒤편의 다른 고양이들
다른 고양이들이 머무는 급식 장소 앞에 앉아 있는 애기야. 2026년 10월 22일.

미국고양이수의사회(AAFP)의 2024년 지침은 고양이 사이의 긴장이 흔하지만 그 신호가 대부분 미묘해서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따로 떨어진 급식 공간이 경쟁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 지침은 집 안에서 여러 고양이와 사는 가정을 위한 것이라 마당의 고양이들에게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그래도 내가 마당에서 배운 것과 겹치는 대목이 있다. 그릇의 개수가 곧 먹을 수 있는 고양이의 수는 아니었다. 그릇을 몇 개 놓느냐만큼, 그 그릇에 누가 다가갈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모든 고양이에게 똑같이 줄 수는 없었다

노랭이 엄마와 짹순이, 다온이, 애기야에게만 두 번을 더 주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아이들이 우리 집 마당에 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고, 그들이 머물 자리를 서툴게나마 만들어 주었다. 손을 쓰고 마음을 쓰다 보니 걱정과 애정이 따라왔다. 현관문을 열면 그 아이들이 거기 있으리라 예상하고,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그것이 이 넷을 특별하게 만든다. 나는 그들을 나와 관계를 맺은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특식도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호두와 집 안 고양이들의 아침밥을 차릴 때 늘 같은 음악을 튼다. 노랭이 엄마는 그 음악이 밥과 관계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음악이 흐르고 집 안이 시끌벅적해지면, 노랭이 엄마는 가끔 현관 방충망 앞에 앉아 안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그 시선을 모른 척하기 어려워 간식을 조금씩 나눠 주곤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짹순이의 딸 다온이에게도 나눠 주었다. 다온이는 그때만 해도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담장 쪽에 살던 애기야는 노랭이 엄마가 간식을 먹을 때면 울면서 제 몫을 달라고 했다. 애기야에게도 주었다. 그래도 그때는 매일이 아니었다. 노랭이 엄마가 음악이 나올 때마다 방충망 앞에 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간식이 매일의 식사가 된 데에는 10월 초의 일이 있다.

10월 4일 아침, 노랭이 엄마가 아침 급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걱정하던 차에, 몇 시간 뒤 온몸이 흠뻑 젖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맑은 날에 그렇게 젖은 고양이는 흔치 않다. 물을 댄 논에서 다른 고양이와 한바탕 싸운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날 밤 야식을 주다가 뒷다리 뒤꿈치에서 제법 큰 상처를 발견했다. 싸우다 물린 상처로 보였다. 상처가 아직 물러 보여서 오래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덧나서 염증이라도 생기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다음 날인 10월 5일, 데이비드의 2차 예방접종과 호두의 2차 백신 때문에 이웃 도시의 동물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나는 노랭이 엄마의 상처를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을 수의사에게 보여 주며 사정을 설명했다. 심하지는 않지만 기침을 하고 있던 애기야 이야기도 했다. 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새끼 고양이들이 잇달아 죽어 나가는 것을 본 뒤라, 그 기침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수의사는 항생제와 감기약이 든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날 밤부터 야식 시간에 국물을 만들어 노랭이 엄마의 몫에 약을 섞었다. 애기야의 몫에는 수의사가 일러 준 대로 애기야의 체중에 맞춘 양을 넣었다. 다온이에게는 약을 넣지 않은 국물을 주었다. 이튿날부터는 아침에도 같은 방식으로 챙겼다. 집 안 아이들의 아침밥에 쓰고 남겨 둔 국물이었다. 그렇게 사흘 동안 하루 두 번 약을 먹였고, 언제부터인가 짹순이도 이 자리에 끼었다. 약을 먹이려고 시작한 식사는 약이 끝난 뒤에도 남았다. 지금의 07:10 국물 아침과 21:40 야식이다.

지금 노랭이 엄마의 상처 주변에는 털이 다시 자랐다. 그래도 10월 21일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처가 아직 보였다. 처음 발견했을 때와 이번 모두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노랭이 엄마는 눈에 띄는 이상 없이 활발하게 지낸다. 애기야의 기침은 많이 줄었지만 아직 가끔 기침을 한다.

반대로, 특식을 일부러 주지 않은 고양이들도 있다. 화이티 아빠와 노랭이 아빠, 골목 윗집의 수컷 뻔뻔이가 가끔 와서 같이 먹겠다고 버텼다. 셋 다 몸집 큰 수컷이다. 마음이 약해져 한 번 나눠 주면, 열에 아홉은 다음 날 아침이나 밤에 다시 와서 현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이티 아빠와 뻔뻔이가 내가 만든 겨울집에서 자고 아침에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몇 번 있다.

나는 그 녀석들이 이곳에 눌러앉으면 노랭이 엄마와 짹순이는 몰라도 어린 다온이와 애기야는 밀려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셋은 서로 견제하는 것 말고는 이 동네에 천적이 없고, 몸이 튼튼해 밖에서 사냥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내가 이 녀석들의 조름에 웬만해서는 넘어가지 않은 이유다.

물론 원칙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화이티 아빠는 저녁밥에 자주 늦어서, 현관 앞에서 꿍얼거리며 밥을 달라고 한다. 요즘은 마당 아이들에게만 주는 21:40 야식까지 조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의 아이인 화이티의 아버지다. 어쩔 수 없이 사정을 봐주게 된다. 녀석도 요즘은 내가 만지려 하면 조금씩 허락한다.

이것은 우리 마당과 그 주변의 몇몇 고양이를 지켜보며 내린 내 판단이다. 다른 곳의 고양이들에게도 맞는 규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밥을 주면서도 답하지 못한 질문들

처음에 다른 고양이들에게 선뜻 규칙적으로 밥을 주지 못한 데는 아내의 걱정 말고 내 나름의 망설임도 있었다. 나는 길고양이들이 내 밥에 의존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사료와 물이 시골에 사는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도움인지 확신이 없었다. 필요하다 해도 문제였다. 역설적이게도 나의 도움이 그들의 생존력을 약하게 만들지 않을까 두려웠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어떤 명료한 논리에 도달해서 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도움이 그들을 전적으로 내게 기대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나머지는 단순하다. 그들을 조금 도와주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뿐이다.

막연한 바람은 있다. 내가 내놓는 사료와 물 덕분에 그들이 먹을 것을 찾아 종일 헤매는 시간과 위험이 조금 줄고, 그 시간을 쉬고 노는 데 쓰기를 바란다. 새끼를 낳은 어미라면 정해진 시간에 얼른 배를 채우고 새끼들 곁으로 돌아가, 어미 없이 비는 위험한 시간이 줄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끼들이 어미의 따뜻한 젖을 먹으며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아니, 더 단순하게는, 생존에 대한 그들의 본원적인 스트레스를 잠시라도 잊는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

사냥에 관해서는 참고할 만한 연구가 있다. 영국 엑서터 대학 연구팀이 2021년 학술지 Current Biology에 발표한 연구로, 보호자와 함께 사는 반려묘 가정을 대상으로 했다. 고기 단백질이 많고 곡물이 없는 사료를 준 가정에서는 고양이가 잡아서 집에 가져온 동물이 36% 줄었고, 하루 5~10분씩 사냥을 흉내 낸 놀이를 한 가정에서는 25% 줄었다. 집에서 밥을 먹는 고양이도 사냥을 하며, 무엇을 먹고 어떻게 노느냐에 따라 사냥하는 경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 연구가 센 것은 고양이가 집으로 가져온 사냥감이지 사냥의 전부가 아니다. 길고양이가 사람이 주는 밥 때문에 사냥 능력을 잃는지를 확인한 연구도 아니다. 내가 처음 품었던 질문에 곧장 답해 주지는 않는다.

이웃과의 관계도 아직 질문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밥 주는 일로 이웃과 다툰 적은 없다. 다만 두 가지는 적어 둔다.

하나는 나와 가깝게 지내는 옆집 할머니의 이야기다. 연세가 지긋한 이 어르신은 고양이들이 당신 밭에 똥을 싼다고 하신다. 내가 밥을 너무 자주 준다고도 하신다. 요즘은 그냥 이해해 주시는 눈치다. 다정한 분이다.

다른 하나는 담 너머 집 남자 어르신의 이야기다. 어르신은 동네에 고양이가 늘어난 뒤로 야생동물이 줄었다고 하신다. 청설모와 몇몇 새가 눈에 띄게 줄었는데 고양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에 닭을 키우는 작은 우리를 두고 계신데, 고양이들이 거기서 달걀을 깨 먹는다고도 하신다. 이분과는 다툼이라기보다 고양이의 생태계 교란을 두고 토론에 가까운 대화를 두 번 나눴다.

어르신의 말씀이 이 동네에서 실제로 맞는지 나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고양이가 야생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는 많다. 2022년 학술지 Journal of Animal Ecology에 실린 리뷰 논문은 문헌 2,245편을 검색하고 그중 기준에 맞는 332편을 분석했다. 논문은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사냥뿐 아니라 공포, 질병, 경쟁을 통해 야생동물에게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세계 곳곳에서 야생동물의 멸종과 감소에 기여해 왔다는 연구가 방대하다고 정리한다. 동시에 그 연구가 해양 섬과 호주, 유럽, 북미에 몰려 있고 아시아 같은 지역의 연구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니 이 연구들로 이 마을의 청설모와 새, 어르신의 달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판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어르신의 말씀을 근거 없는 이야기로 넘길 수도 없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나의 경험도, 고양이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이웃의 경험도 모두 이 동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들은 나의 ‘지묘’다

5월 14일, 현관 앞에 뼈다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고양이의 보은’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일은 두 번 더 있었다. 7월 27일 월요일 아침, 호두와 산책을 나서다 현관 근처에서 갈비뼈를 발견했다. 이웃에서 바비큐를 하고 떨어뜨린 것을 누군가 주워 온 것 같았다. 같은 날 오후 2시쯤에는 현관 발판 위에 족발 뼈들이 놓여 있었다. 이 마을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부모님을 찾아온 가족들로 북적인다. 평소 조용하던 골목 여기저기서 사람 소리가 들리고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 광경을 몰래 지켜보던 고양이들도 남은 음식으로 저희끼리 파티를 여는 모양이다.

현관 앞의 그것들이 정말 나에 대한 보은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녀석이 그 뼈를 거기 두었는지도 나는 보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렇게 믿고, 기뻐하고, 고마워할 뿐이다. 내 상상 속의 유대다. 하지만 상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재하는 것도 있다. 그들과 나 사이에서 조금씩 좁혀지는 거리다.

처음 나를 보기 시작한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경계가 컸다. 내가 다가가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사료는 먹되, 먹다가도 내가 다가가면 모두 달아났다. 그런 그들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 왔다. 이제는 손길을 허락하기도 하고, 내 다리에 몸을 비비기도 한다. 밥을 달라고 현관 방충망 앞에서 기다리고, 호두와 산책하는 길에서 멀리 우리를 지켜보기도 한다. 어떤 녀석은 집고양이처럼 나에게 뭔가를 꿍얼댄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결국 내가 주는 사료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짹순이는 내가 이사 온 직후부터 내 사료를 먹었지만 지금도 내가 가까이 가면 경계한다. 어떤 날은 쓰다듬는 것을 허락하던 녀석이 어떤 날은 근처에만 가도 도망간다. 그래도 그들은 밥때가 되면, 혹은 한 시간 전부터 우리 집 밥자리에 와서 기다린다.

노랭이 엄마는 얼마 전까지도 나에게 하악질을 했다. 내가 ‘환란의 시기’라고 부르는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동네 새끼 고양이들이 갑자기 잇달아 아프고 죽어 나갔다. 나는 아픈 새끼들을 병원에 데려가고, 데려가지 못한 아이들은 약을 들고 찾아다녔다. 그래도 살린 것은 단 두 마리뿐이었다. 노랭이 엄마의 아들 데이비드와 짹순이의 딸 다온이다.

데이비드는 노랭이와 같은 어미에게서 6~8개월쯤 뒤에 태어난 동생으로, 털 색깔과 무늬가 노랭이와 거의 똑같다. 아버지도 같을 것이라고, 내가 ‘노랭이 아빠’라고 부르는 녀석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데이비드는 병원에 다녀온 뒤 집 안에서 간호하다가 결국 우리 가족이 되었다. 다온이는 집에 들이지 못했다. 대신 약을 넣은 국물과 아이들이 좋아하던 캔을 들고 다온이와 같은 배에서 난 끈끈이를 찾아다녔고, 보일 때마다 그 앞에 놓아 먹게 했다. 아픈 고양이는 죽기 전에 숨는 일이 많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온이는 살아남았지만, 끈끈이는 그러지 못했다.

데이비드가 아프기 전에 노랭이 엄마는 이미 데이비드를 독립시켰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데이비드를 집에 들이고 며칠 지나지 않아 노랭이 엄마가 우리 마당에 살기 시작했다. 하악질을 멈추고 내 다리에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발정기에는 나를 보며 바닥에 몸을 굴리기도 했다. 요즘은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는 것 같다.

다른 고양이들도 그 속도와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 유대가 깊어지고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하다. 언어로 정리할 수 없어서 또렷한 생각으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직관을 믿을 수 있다면, 나는 그냥 그것을 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 유대감은 나에게 정말 강렬하다. 타인을 넘어 나의 바깥, 말하자면 외계의 생명체와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것 자체가 짜릿하다. 무엇보다 그들이 나에게 호감을 보일 때면,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를 정말 좋아해 주던 그 시절의 극한의 행복감이 노스탤지어처럼 되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그들을 아낀다. 밥을 주는 일의 타당성을 찾아 나를 합리화하기보다, 그들과 함께 이 일에서 느끼는 행복을 그냥 누리고 있다.

그들은 나의 ‘지묘(知猫)’다. 나에게, 그리고 내 삶에 특별한 존재들이다.

지묘는 지인(知人)에서 빌려 와 내가 만든 말이다. 지인은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니다. 나와 관계를 맺어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람이다. 지인에게는 계산보다 호의가 먼저 나간다. 흔히 말하는 ‘지인 찬스’다. 내 지묘들 가운데서도 우리 마당에 사는 네 아이, 노랭이 엄마와 짹순이, 다온이, 애기야는 밥을 먹으러 오는 다른 고양이들보다 나와 더 깊은 관계를 맺은 각별한 존재다. 07:10의 국물과 21:40의 야식은 말하자면 지묘 찬스인 셈이다.

밥그릇을 씻는 사람의 몸에 바짝 기대고 있는 줄무늬 고양이 다온이
점심 급식 후 밥그릇을 씻는 내 몸에 바짝 기대는 다온이. 2026년 10월 23일.

그렇다고 지묘가 가족은 아니다. 내 마음속에서 지묘는 밥을 먹으러 오는 바깥 고양이들과, 집 안에서 함께 사는 가족 사이 어디쯤에 있다. 호두와 칸트, 후쿠, 화이티, 노랭이, 데이비드가 내 가족이다. 문제는 그 중간 자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묘들은 내 마음속에서 조금씩 가족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아마 나는 혈연이 있거나 한집에 살아야 가족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애써 선을 긋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그것은 최소한의 방어 기제다. 그들은 언제든 내 마당을 떠날 수 있고, 사고나 질병, 싸움으로 죽을 수도 있다. 가족이 아니라면 나는 조금 덜 걱정하고 조금 덜 슬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애기야는 며칠 전 우리 마당을 떠나 옆집 창고로 옮겨 간 것으로 보인다.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그리고 더 큰 이유가 있다. 나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생각한다. 가족을 향한 내 사랑은 크고, 그만큼 그리워하고 걱정한다. 그 마음의 비용이 내 안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거기까지는 힘들어도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용 때문에 지금 내 곁의 가족에게 마음을 덜 쓰고 덜 챙기게 된다면, 나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가 하려는 일과 내 삶에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래서 일단 내 삶에 들어온 가족과는 삶의 자원을 나누되, 그 바깥에서 관계를 맺은 동물이나 사람을 가족의 자리, 혹은 가족과 비슷한 자리로 들이지 않으려고 실제로도, 마음으로도 노력하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내 성격으로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지묘들이 먼저 내 마음속에서 가족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나뿐 아니라 내 가족도 힘들어진다. 요즘 내가 가장 경계하는 일이다. 내 가족인 노랭이와 데이비드의 엄마, 노랭이 엄마가 친숙한 가족의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배를 하늘로 드러내도, 내가 따라다니며 약을 먹였던, 죽어 가다 돌아온 다온이가 이제는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안아 달라고 골골대도, 그때 나는 정신줄을 놓지 않고 그들을 지묘의 경계에 가두려 아랫입술을 깨문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곧 겨울이다. 이곳에서 맞는 첫 겨울이고, 나는 그들의 겨울을 모른다. 혹독한 시간이 되리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겨울을 나는 고양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아직 알지 못한다.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때그때 배우고, 또 뭔가를 하게 될 것이다.

11월과 12월이면, 내가 보기에 지금 대부분 임신 중인 동네 암컷들이 또 새끼들을 낳을 것이다. 핑크 예쁜이 엄마는 골목 윗집 옆 컨테이너에 새끼를 낳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또 많은 새끼가 죽어 갈 것이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의 ‘환란의 시기’가 다시 되풀이될까.

실제로 밖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낮고, 죽는 이유도 여러 가지다. 집 밖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이 어릴 때 많이 죽는 것은 흔한 일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수의사는 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미국의 야외 고양이 집단을 관찰한 한 연구에서는 새끼 고양이의 75%가 생후 6개월 안에 죽거나 사라졌다. 곧 닥칠 겨울 한파도 그들이 죽어 갈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다. 나는 또 한 번 슬픔과 패닉에 빠지게 될까? 아니면 죽음조차 익숙해질까?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은 밥을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쁘고, 걱정되고, 슬프고, 고단하고, 때로는 욕도 먹는 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문명과 사회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에게, 사회 바깥의 존재와 마음을 주고받는 일은 생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죽어 가는 인간의 아이를 돕는 일처럼 숭고한 일도 아니다. 나는 그저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바로 내 작은 골목, 내 작은 세계의 고양이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며 행복해할 뿐이다.

나는 개와 고양이가 이미 인간의 문명 안에 들어와 그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야생의 고릴라나 사자, 기린과는 다르다. 그들은 우리 문명 안에서 같은 편으로 살아간다. 집 안의 가족은 아니어도, 우리 마당에 함께 사는 지생(知生)쯤은 되지 않는가. 그래서 정교한 윤리적 논리 없이, 그저 사람들이 개, 고양이와 함께 공존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큰 기대를 하거나 캠페인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 거창한 동물 보호 운동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 사람과 그들의 공존은 정책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변의 그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따뜻하든 차갑든 상관없이, 우리가 문명 안에서 타인과 그들의 삶을 존중하듯 이 문명과 생태계 안에서 같은 생명을 존중하고 함께 살려는 마음에서 공존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이 지구가 인간만의 것이 아니며 모두가 이곳에서 함께 살 권리를 본래부터 지니고 있다는 자각에서 나오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