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를 집에 들이기까지: 노랭이와 화이티가 가족이 된 이야기

방충망 앞에 앉아 화이티의 얼굴을 핥아주는 노랭이

2026년 4월 29일 아침 9시 38분, 노랭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전날 밤 다친 왼쪽 앞발을 절뚝거리면서 골목을 걸어오고 있었다. 병원에 데려가려고 준비하던 사이 갑자기 사라진 뒤였다. 나는 집 입구에서 호두와 함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랭이가 보이는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노랭이와 화이티를 집 안으로 들여 함께 살아야 할지 몇 주 동안 고민해 왔다. 이미 한 번 두 아이를 집 안으로 들였고, 다시 밖에서 살게 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다섯 동물을 책임지고 사는 삶이 두려웠고, 밖에서 살아온 아이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절뚝거리며 돌아오는 노랭이를 본 순간 그런 고민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미 두 아이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처음 마당에 나타난 노랭이와 화이티

나는 2026년 2월 27일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동네 고양이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이사 온 뒤 고양이들이 가끔 마당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고, 호기심에 고양이 사료를 그릇에 담아 현관 입구에 놓았다. 고양이들이 와서 먹는 모습이 재미있었고, 집 안의 칸트와 후쿠에게도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정도였다.

그 무렵 마당에 오던 고양이들은 대부분 성묘였다.

그런데 유난히 작고 마른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처음부터 나를 크게 무서워하지 않았고 가까이 다가왔다. 기침을 심하게 했고 몸은 매우 말라 있었다. 힘이 없어 보였고 누워 자는 시간이 많았다.

노랭이였다.

그리고 노랭이 곁에는 푸른 눈을 가진 흰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노랭이보다 조금 더 커 보였고 건강해 보였다. 사람에 대한 반응은 노랭이와 정반대였다. 내가 다가가면 금세 도망갔다.

화이티였다.

두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한 가지는 눈에 띄었다.

노랭이와 화이티는 거의 항상 함께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화이티가 노랭이 곁을 잘 떠나지 않았다.

3월 18일, 늘 마당에서 보이던 노랭이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화이티만 나타났다.

몸이 약한 노랭이가 어디에서 사고라도 당한 것은 아닐까 걱정됐다. 당시 나는 밖에서 사는 고양이가 내가 주는 사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매일 밥을 주지는 않았는데, 그것 때문에 노랭이가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3월 20일 노랭이는 화이티, 그리고 내가 노랭이의 엄마로 알고 있던 고양이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근처에서 보던 암컷 고양이 가운데 노랭이와 유난히 닮은 고양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노랭이와 화이티를 우리 집에 들여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도 조금씩 생겼다.

자갈밭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는 흰 고양이 화이티
2026년 3월 19일, 집 주변에서 촬영한 화이티.
마른 몸의 노랭이가 집 밖 턱 위의 투명 용기에서 사료를 먹는 모습
2026년 3월 19일, 몸이 많이 말라 있던 시기의 노랭이가 집 밖에서 사료를 먹고 있다.

화이티는 늘 노랭이 곁에 있었다

3월 20일 이후 두 아이는 밤에도 우리 집을 거의 떠나지 않았다.

당시는 3월 중순을 넘긴 시기였지만 아침과 밤에는 상당히 추웠다. 노랭이와 화이티는 현관 밖 처마 아래에 세워둔 자전거 방수커버 안에서 자곤 했다. 나는 바닥의 한기를 조금이라도 막아주고 싶어서 천을 여러 겹 깔아주었다.

그러자 두 아이는 낮에도 다른 곳으로 멀리 가지 않고 그곳에서 쉬거나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밤이 되면 걱정됐다.

길고양이용 겨울집을 하나 사서 현관 밖에 놓고 안에 천을 깔았다. 두 아이는 자전거 커버 안과 겨울집을 번갈아 사용했다.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경계심이 많은 화이티는 그 겨울집에 혼자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사방을 살필 수 있고 급하면 빠져나오기 쉬운 자전거 커버 안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노랭이가 겨울집 안에서 자고 있으면 화이티도 들어갔다.

노랭이가 자전거 커버 안에서 자면 화이티도 그곳에 있었다.

둘이 어떻게 만나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두 아이를 알고 지켜본 시간 동안에는 화이티가 거의 언제나 노랭이 곁에 있었다.

나는 어느새 두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추운 밤, 두 아이를 집 안에 들이고 싶었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노랭이였다.

뼈가 만져질 정도로 말라 있었고 기침도 계속됐다. 동네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노랭이에게 세 마리의 형제가 있었는데, 모두 비슷하게 기침을 하다가 죽었다고 했다.

노랭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진료도 받았다. 기침하는 영상을 보여주었고 주사와 약을 처방받았다. 치료 뒤 기침 횟수는 조금 줄었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밤과 아침의 기온이 충분히 올라갈 때까지라도 노랭이가 따뜻한 실내에서 자면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노랭이만 집 안에 들일 수는 없었다.

건강해 보였던 화이티까지 반드시 실내에 있어야 한다는 의학적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밤마다 노랭이와 붙어 지내던 화이티를 노랭이와 떼어놓는 것은 내게 옳은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입양으로 이어졌다.

나는 노랭이를 도와주고 싶었다. 화이티가 노랭이에게 보여주는 관계에도 깊은 인상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두려웠다.

이미 호두와 칸트, 후쿠를 돌보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 생활의 자원이 필요했다. 후쿠를 처음 데려왔을 때 칸트가 보였던 강한 거부 반응도 기억하고 있었다. 고양이 두 마리를 한꺼번에 더 들였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두 아이를 돕고 싶다는 마음과 앞으로 감당해야 할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우선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첫 번째 실내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집 안의 호두, 칸트, 후쿠와 접촉시키기 전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4월 1일, 몇 번의 실패 끝에 노랭이와 화이티를 현관 안으로 유인해 이동장에 넣고 병원으로 갔다.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수의사는 약을 모두 먹인 뒤 다른 동물들과 만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그날 나는 두 아이를 집 안으로 들였다.

운동하던 방에 화장실과 물, 잠자리를 마련하고 다른 동물들과 분리했다.

하지만 첫날 밤부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화이티는 안절부절못하며 계속 울었다. 노랭이는 실내를 비교적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화이티의 반응은 달랐다. 나 역시 두 아이가 걱정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결국 둘을 다시 밖으로 내보냈다.

그때 마음속으로는 입양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곧바로 모든 실내생활을 끝낸 것은 아니었다.

낮에는 밖에서 지내게 하고 밤에는 집 안에서 재우는 방식을 한동안 계속했다.

밤 산책을 마친 뒤 사료와 간식으로 노랭이와 화이티를 현관 안으로 유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매일 밤 화이티를 집 안으로 들이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다. 실내에 들어온 뒤에도 한동안 중문 앞에서 울었다.

노랭이만 안에 남겨두고 화이티를 밖에서 살게 하는 것은 내게 선택지가 아니었다.

두 아이를 함께 받아들이거나, 함께 밖에서 살게 하거나.

내게는 그 두 가지 중 하나였다.

다시 밖에서 돌보기로 했다

4월 10일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후쿠가 평소와 달리 조용해지고 식사를 하지 않았다. 과거 소장 이물로 수술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병원에 데려갔고, 결국 정밀검사를 받고 하루 동안 입원했다.

다행히 검사에서는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후쿠는 수액을 맞은 뒤 기력을 회복했고 며칠 뒤에는 평소 모습을 되찾았다.

후쿠가 아픈 원인이 노랭이와 화이티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두 아이와 합사를 시작한 직후 후쿠에게 이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당시의 나에게는 어려웠다.

4월 12일부터 나는 노랭이와 화이티를 다시 밖에서 재우기 시작했다.

밤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았고, 낮에는 따뜻한 봄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마당으로 돌아와 있었고 겉으로는 건강해 보였다. 후쿠도 다시 회복했다.

나는 두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해주고,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하면서 밖에서 돌보기로 했다.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것이 아이들의 자유를 빼앗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마당의 매트 위에 누운 호두와 노랭이, 뒤쪽 자갈밭에 있는 화이티
2026년 4월 14일, 노랭이와 화이티가 다시 밖에서 지내던 시기의 호두·노랭이·화이티.

4월 28일 밤, 내가 보지 못했던 위험

4월 28일 밤 11시에서 자정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현관 밖에서 고양이가 크고 날카롭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바로 집 밖이었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노랭이와 화이티가 자주 자던 자전거 커버 아래와 겨울집을 살펴봤지만 둘 다 없었다. 손전등을 들고 마당을 찾다가 옆집 담 근처의 풀밭에서 흰 털이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직접 싸움이 벌어지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당시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집 바로 밖에서 고양이들의 격한 소리가 났고, 털이 많이 빠져 있었으며, 노랭이와 화이티가 평소 잠자리에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옆집 담의 작은 구멍 안에서 먼저 화이티를 발견했다.

손전등을 비추자 구멍 안에 화이티의 얼굴이 보였다.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화이티가 좋아하던 사냥 장난감을 가져왔다. 장난감의 방울 소리에 반응한 화이티가 밖으로 나왔다. 겉으로 보이는 큰 상처는 없었다.

이번에는 노랭이를 찾아 나섰다.

골목까지 나가 손전등을 비추며 찾아다녔지만 노랭이는 없었다.

얼마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마당을 살피다가 현관 옆 겨울집 안에서 노랭이를 발견했다.

이름을 부르고 손을 뻗자 노랭이가 하악질을 했다.

노랭이가 나에게 그렇게 한 것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걸었고,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겨울집에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왼쪽 앞발에 피가 묻어 있었다.

상처는 크고 깊었다.

노랭이의 왼쪽 앞다리 상처를 확인하는 모습
2026년 4월 29일 아침, 전날 밤 이후 확인한 노랭이의 왼쪽 앞다리 상처.

노랭이는 절뚝거리며 걸었다.

나는 노랭이를 집 안으로 데려와 가지고 있던 포비돈요오드로 급하게 상처를 소독했다.

그날 밤 노랭이는 거실의 큰 테이블 아래, 호두의 이불 위에서 잠이 들었다.

노랭이가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노랭이는 전날 밤보다는 안정돼 보였다.

여전히 다친 발을 디딜 때마다 절뚝거렸다.

나는 화이티와 함께 있으면 조금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노랭이를 잠시 밖으로 내보냈다. 노랭이는 최근에는 마당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갈 준비를 마치고 이동장을 들고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그런데 노랭이가 없었다.

화이티는 그대로 있었지만 노랭이만 사라졌다.

그 순간 이전에 수의사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당에 먹이와 잠자리를 제공하면 다른 고양이가 그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기존의 고양이를 밀어낼 수도 있다고 했었다. 특히 번식 시기에는 그런 싸움이 일어날 수 있으니 밤에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행하지 않았다.

매일 밤 두 아이를 잡아 철장 안에 넣는 일이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것이 아이들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전날 밤의 사건 뒤 갑자기 사라진 노랭이를 기다리면서 그 이야기가 계속 떠올랐다.

집 입구에 앉아 호두와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났다.

09:38, 노랭이가 돌아왔다

오전 9시 38분.

골목에서 노랭이가 나타났다.

다친 발을 절뚝거리며 우리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마당 너머에서 집 쪽으로 걸어오는 노랭이와 앞쪽 방석에 누운 호두
2026년 4월 29일 오전 9시 38분, 다친 발을 절뚝이며 집으로 돌아오던 노랭이를 촬영한 영상의 한 장면.

그 순간 나는 노랭이와 화이티를 집 안으로 들여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그날 갑자기 두 아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계속 망설이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미 두 아이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분명하게 알았다.

노랭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마주했고, 노랭이가 다시 나타났을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책임이 두렵다는 생각도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칸트가 어떻게 반응할지, 다섯 동물을 돌보며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런 문제들은 결정의 조건이 아니었다.

노랭이와 화이티는 내가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은 존재였다.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삶에서 그렇게 분명한 확신이 찾아오는 순간이 몇 번이나 있을까.

그날부터 두 아이는 집 안에서 살았다

노랭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았다.

주사를 맞고 상처를 치료했으며 집에 돌아온 뒤에도 처방받은 약을 먹이고 소독을 계속했다.

그날부터 노랭이와 화이티는 집 안에서 살았다.

책장 앞 담요 위에서 몸을 붙이고 잠든 노랭이와 화이티
2026년 4월 29일 저녁, 집 안에서 몸을 붙이고 잠든 노랭이와 화이티.

흥미롭게도 이전의 실내생활과는 달랐다.

첫 번째 실내생활 때 화이티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랭이와 화이티 모두 밖으로 나가겠다고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나중에는 방충망 문이 실수로 열린 적도 있었지만, 문 앞에 있던 두 아이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변화를 4월 28일 밤의 사건과 연결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두 아이가 그날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왜 행동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이 달라졌다는 사실뿐이다.

집 안의 다른 동물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두 아이를 받아들였다.

후쿠는 노랭이와 화이티에게 비교적 자연스럽게 다가가 함께 뛰어놀기도 했다.

호두는 이미 마당에서 두 아이를 많이 보았던 탓인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화이티가 호두를 피해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면 본능적으로 뒤쫓는 경우는 있었다.

칸트는 달랐다.

노랭이와 화이티가 다가가면 하악질을 하거나 앞발을 들었다. 지금도 둘의 관계가 특별히 가까워진 것은 아니다.

지금 호두와 네 고양이가 함께 사는 방식은 별도의 글에 더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나는 화이티와도 빨리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화이티는 여전히 나를 경계했고 가까이 다가가면 피했다.

그렇다면 피할 수 있는 거리를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친해져야 한다는 목표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다음 날에는 호두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쉬고 있었다.

책장 앞 바닥에서 각자의 자리에 누워 쉬는 화이티, 노랭이, 호두
2026년 4월 30일 저녁, 같은 실내 공간에서 함께 쉬고 있는 화이티·노랭이·호두.

며칠 뒤에는 노랭이와 화이티, 후쿠가 함께 책장 위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서로 친한 것은 아니었다.

네 고양이가 함께 사는 집에서 공간과 자원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는 다묘가정 가이드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하지만 노랭이와 화이티는 더 이상 현관 밖 겨울집에서 밤을 보내지 않았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일찍 두 아이를 집 안으로 들였을까.

그 질문에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당시의 나에게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기존 동물들에게 생길 수 있는 변화도 고려해야 했고, 다섯 동물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야 했다.

밖에서 살아온 노랭이와 화이티의 삶을 내가 임의로 바꾸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4월 28일 밤의 사건이 그런 문제들에 대한 정답을 알려준 것은 아니다.

그 사건은 다른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이미 노랭이와 화이티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시간이 돌아가더라도 나는 결국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노랭이와 화이티가 가족이 된 뒤 나는 두 아이를 돌보느라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쓴다. 생활도 그만큼 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내가 잃은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는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노랭이와 화이티가 우리 집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막연했던 바람이 어떤 구체적인 생활의 모습으로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노랭이와 화이티가 내 삶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사실 자체가 내 삶의 한 부분이다.